차주는 뿔나고 업계는 갸우뚱…전기차 대책 이게 맞나

24-08-14 14:14    |     Comment  0

벤츠 전기차 화재 이후 정부와 지자체 주도로 여러 안전 대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실효성보다는 보여주기식 조치에 머물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 공포증을 진화한다는 명목으로 차주의 권익을 제한하거나 기존 안전·관리 매뉴얼과 어긋난 내용으로 혼선을 빚는 경우도 있다. 정부와 지자체의 조치 하나하나가 자동차 업계는 물론 차주와 소비자 등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장을 고려할 때 보다 신중하고 충분한 근거를 갖춘 대책들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충전율 90% 제한에 따라붙는 물음표


최근 나온 전기차 안전 대책 가운데 가장 의견이 분분한 건 '충전율 90% 제한' 조치다. 앞서 서울시는 전기차의 배터리 잔량이 90%를 넘어서면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의 출입을 막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완충에 가깝도록 충전된 전기차의 출입을 제한해 혹시 모를 화재를 예방한다는 취지인데 그 실효성에 물음표가 따라붙고 있다.


먼저 업계에서는 해당 대책이 완충과 과충전의 개념을 혼돈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전기차 화재의 원인으로 꼽히는 과충전은 이미 완충된 상태에서 멈추지 않고 충전기를 계속 꽂아 전류가 기준치 이상으로 흐를 때 발생한다. 적정선을 넘은 충전이 지속돼야 과충전이지 완충 상태 자체만으로는 화재의 위험성을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발 물러서 완충 역시 화재의 위험성이 있다 하더라도 '충전율 90% 제한'이 적절한지에는 여전히 의문을 던진다. 이미 전기차는 일부 충전 구간을 사용하지 않고 남겨두도록 기술적으로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이를 안전 마진이라고 하는데, 통상 설정값은 3~5% 정도다. 계기판에 100% 완충이라고 떠도 실제로는 95~97%만 충전되는 것이다.


한국전기차사용자협회 김성태 회장은 "100% 완충한다는 건 과충전이 아니라 엄연한 정률 충전이다. 과충전이라고 하면 100%를 넘어 110%, 120% 충전하는 걸 뜻하는데 100% 완충을 과충전이라는 표현 아래 막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며 "안전 마진도 몇 퍼센트가 적당한지 모호한 상황에서 충전율을 90%로 제한한다는 건 더구나 증명된 기준이 아니다. 과학적이고 학술적인 방법으로 충전율을 몇 퍼센트까지 제한하는 게 화재 예방에 적정한 수준인지 확립하는 일이 우선이다"고 지적했다.


차주는 부글부글, 소비자는 어리둥절


전기차 차주들의 반발은 특히 심하다. 가뜩이나 짧은 주행거리로 불편을 겪는 경우가 잦은데 충전율 제한은 주행거리 감소와 직결돼서다. 충전율 제한 조치로 소유중인 전기차의 성능을 100% 활용하지 못하면 결국 소비자 권익을 그만큼 침해한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주차장 출입 자체를 금지하는 것도 일종의 형평성 문제로 번질 수 있다.


한 전기차 차주는 "전기차 가격이 6천만원이면 사실 배터리 가격만 4천만원"이라며 "4천만원 중에 내가 원하지도 않는데 기능을 10% 제한한다면 이건 400만원어치의 기능을 쓰지 말라는 얘기와 같다"고 말했다.


소비자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서울시의 충전율 제한과 달리 자동차 업체들은 그동안 주기적인 완충이 전기차 배터리의 성능을 관리하고 안정성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안내해왔다. 한달에 한번 정도 배터리 충전량을 20% 이하로 떨어뜨린 다음 완속충전기로 100%가 될 때까지 충전하는 이른바 '셀 밸런싱' 작업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렇게 해야 배터리 셀 사이 전압차가 균일해지면서 특정 셀에 과부하가 걸리는 현상을 사전에 방지할 수 있다.


많은 이들이 갸우뚱하는 지점도 바로 이 대목이다. 이번 벤츠 전기차 화재의 원인이 과충전보다는 배터리 성능 문제일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기존 배터리 안전·관리 매뉴얼과 어긋난 충전율 제한이 과연 적절한 진단과 처방인지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인천 벤츠 전기차 화재는 충전중이 아니라 단순한 주차 상태에서 불이 났다"며 "사고를 정확히 분석했다면 충전 문제 이전에 배터리관리시스템 기술과 관련한 방안을 먼저 고민하는 게 맞다"고 꼬집었다.


졸속 대책 아닌 실질적 방안 고심해야


다른 대책을 두고도 보다 현실적인 내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부는 전기차 충전 시설을 지상에 설치하면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최근 지상주차장이 없는 아파트가 많다는 점에서 점차 설득력을 잃고 있다. 특히 배터리의 경우 폭염이나 한파 등 외부 날씨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모든 전기차를 지상으로 올리겠다는 발상이 자칫 화재와 대형사고의 위험성을 오히려 키울 수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배터리 제조사 공개도 더욱 적극적인 활용을 요구하는 의견이 많다. 현재 정부는 자동차 업체들이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하면 대당 30만원의 보조금을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이미 현대차와 기아가 배터리 제조사를 공개했고, 수입차 업체로는 BMW 코리아가 가장 먼저 자사 전기차에 탑재된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미온적이던 벤츠 코리아도 입장을 선회해 13일 자사 전기차 8종의 배터리 제조사 정보를 전격 공개했다.


전문가들도 배터리 제조사 공개는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하고 중국산 배터리를 바라보는 일반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취지에서 필요하다는데 공감한다. 다만 배터리 제조사 공개가 곧 화재 예방으로 직접 귀결되지는 않는 만큼 실질적인 활용 방안 마련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단순한 배터리 제조사 정보 공개를 넘어 배터리 이력제를 도입하고, 소비자들에게도 이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안전 문제 발생시 발 빠르게 원인 규명에 나설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12일 환경부 주관으로 관계 부처가 모여 전기차 화재 대책을 논의하고, 13일에는 국무조정실장 주재로 차관 회의를 열어 안전 방안에 머리를 맞댔다. 국내 주요 완성차·수입차 업체도 국토교통부와 안전 점검회의를 갖고 의견을 나눴다. 정부는 각계의 입장을 청취해 다음달 초쯤 전기차 종합 대책을 내놓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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